혼례(婚禮)는 예제(禮制)에 있어서의 관. 혼. 상. 제(冠婚喪祭)의 4가지로서
인륜대사(人倫大事)이다. 따라서 이는 결코 소흘히 하여서는 아니될 성스럽고 경축스러운 의식인 것이다.
옛날부터 『혼례는 각각 성이 다른 두 집의 범절과 분수에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위로는 종묘 축
선조의 혼령을 섬기고, 아래로는 가문을 후세에 계승시키기 위한 것이라 하여 중히 여겨왔다. 또한 『두
성의 결합이요. 백가지 복의 근원이며 생민의 시초 』라 하였다. 이렇듯 중요한 혼인을 결혼만 하면
자연히 행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들과 화합하며 안으로 행복을 창조해
나가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결혼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 』라고 하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혼인에 즈음하여 금기(禁忌)로 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서둘러서 혼인하지 말며, 둘째로 미색(美色)에 홀려 사람됨을 간과(看過)하지 말며, 셋째로 가문보다
재물을 탐욕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외 현구고례(見舅姑禮)와 폐백(弊帛), 근친(覲親)과 풀보기, 사당폐백(詞堂幣帛), 재행(再行),
동상례(東床禮)와 타족장(打足掌)등이 있다.
■
의혼(議婚)
인륜대례(人倫大禮)의 하나인 혼례는 그 지닌 뜻과 장차의 중요성에 비추어 엄격한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그 의식 절차인 육례(六禮)를 갖추어야만 혼인이 성립된다. 육례(六禮)란 사혼례(士婚禮)에서 나온
말로서 곧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폐(納幣), 청기(請期), 친영(親迎)을
말하는 데, 그것이 너무나 번거로워서 중간에 사례(四禮 : 儀婚, 納吉, 納采=納幣, 親迎)로
줄었다. 이는 문공주자가례(文公朱子家禮)를 본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례(儀禮)는 이른 바
선비의 집안에서나 갖추는 것이었고 일반 서민층에서는 그러하지를 않고서도 혼례가 이루어졌었다.
집안의 자녀가 장성하여 어느듯 혼기에 접어들면 부모는 삼세지연(三世之緣)을 맺어주기 위하여 혼인을
서두러게 된다. 그리하여 적당한 규수(閨秀)감을 고르게 되는데, 대개는 경험이 있는 매파(媒婆)로
하여금 규수댁으로 가게해서, 그 규수의 성품(性品)과 행동거지(行動擧止) 그리고 그 집안의 내력을
소상히 살피게 하고, 마땅하다고 여기면 청혼(請婚)을 넣는다. 청혼을 받은 규수댁에서도 매파로 하여금
낭자(郎子 : 신랑감)의 사람됨과 그 집안의 가통(家統) 등을 살피게 하려 마땅하다고 여기면 허혼(許婚)을
하게 된다. 허혼이 내락(內諾)되면 정식으로 청혼서를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한 답장으로 허혼서가
보내진다. 이것을 의혼(議婚)이라고 한다
請婚書 청혼서
伏惟孟春 복유명춘
이는 시절에 따라 씀
尊체候以時萬重 仰素區久之至
존체후이시만중 앙소구구지지
第家兒親事 年及加冠尙無指合處 近聞 ○○洞 ○○氏家閨養淑哲云
제가아친사 년급가 상무지합처 근문 ○○동 ○○씨가 규양숙철운
能其勸誘 使結秦晋之誼如何 餘不備禮謹拜上狀
능기권유 사결진진지의여하 여불비례근배상장
年 月 日
弟○○○拜上
[해석] 때는 이른 봄이온데 존체후 항시 대안하시온지 평소부터 우러러 사모하온 터이옵니다. 저의
미거한 자식(손자이면 孫兒, 조카면 姪兒, 아우면 弟로 씀)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으나 아직 적합한
곳이 없어 혼인시키지 못하였더니 근자에 듣건데 ○○동 ○○ 집의 규수가 숙현하다고 말하면서 권유하옴에
귀하의 귀한 딸과 제 자식을 배필로 맺어주심이 어떠하올런지요. 예를 다 갖추지 못하여 삼가 절하며
글월을 올리나이다.
許婚書 허혼서
伏惟孟春 이는 시절에 따라 씀
복유명춘
尊체候以時萬重 仰素區久之至
존체동지후만중 앙위구구지지
第女兒親事 不鄙寒陋 如是勤勸
제여아친사 불비한루 여시근권
敢不聽從 餘不備伏유
감불청종 여불비복유
○○○拜上 年月日
尊照謹拜 上 존조근배 상장
[해석] 이른 봄철에 즈음하여 존체 안녕하시온지요? 저 역시 귀하를 사모하옵던 차에 그와 같은 글을
주시니 실로 영광이옵니다. 저의 미거한 딸자식의 혼사에 저의 집이 한미한 것도 구애치 않으시고 이와
같이 청혼하시니 감히 귀하의 뜻을 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글로 다 인사를 깆추지 못하오며 삼가
귀하께 절하며 글월을 올리나이다.
■
납채(納采 혹은 四星)
규수댁(閨秀宅)에서 허혼서(許婚書)가 도래하면 신랑댁(新郞宅)에서는 사자(使者)로 하여금 규수댁으로
납채(納采)를 보내는 것이 다음 순서다. 납채를 보내기에 앞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편지를 받들고
사당(祠堂)에 고유(告諭)하여야 한다. 대개 사성(四星)이라고하는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납체서와 함께 신부댁으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 사성(四星)은 일정한 간지(簡紙)를 다섯 번 혹은 일곱 번 접어 그 한 가운데에 쓰며, 이것을
납채문(納采文)과 함께 안쪽은 청보(靑褓)로 밖은 홍보(紅褓)로 싸서 보내게 된다. 이것을 보내는
것은 천간지기(天干地기)로 궁합(宮合)과 앞으로의 길흉(吉凶)을 보고 또 혼례식 날짜의 택일(擇日)에
편리하도록 하는데 뜻이 있다. 이미 청혼시에 서로 생년월일시를 맞추어 궁합을 보게 되는 것이므로
요식절차라 할 수 있다. 납채(納采)가 신부집에 도착 후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 납채(納采)일은 이미 남녀 중매을 통하여 통지되어 있으므로 당일은 만사제폐하고 신부댁 주혼자는
출타를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사자(使者)가 신부댁에 납채를 드리면 주인은 다시 외관을 정제하고
가풍에 따라 북향재배하거나 아니면 그냥 이를 소반에 공손히 받아서는 서함을 개봉한다.
② 사자(使者)는 자리를 피하고 답배(答拜)를 하지 아니한다.
③ 주혼은 먼저 사당(祠堂)에 고유(告諭)하고, 답서를 써서 다소간의 폐(幣)와 함께 사자를
신랑댁으로 보낸다.
④ 사자는 이때 재배치사(再拜致謝)하고 주혼도 답배한다.
告諭祝 고유축
維歲次 ○○ ○月 ○○朔 ○日 ○○ 孝玄孫 ○○敢昭告于
유세차 태세 몇월 일진삭 ○일 일진 효현손 ○○감소고우
顯高祖考學生府君 벼슬이 있는 경우는 학생 대신에 관직
현고조고학생부군
顯高租비孺人 ○○○氏
현고조비유인 본관성씨
○○之子 ○○ 年已長成 未有抗儷 已議聚 ○○군○○之女 今日納采 不勝
○○지자 ○○ 년이장성 미유항려 이의취지방명군성명지녀 금일납채 불승
感愴 謹以酒果用伸 虔告謹告
감창 근이주과용신 건고근고
[해석]○○년 ○월 ○일 효현손 ○○은 삼가 묘위에 감히 고하나이다.
○○의 아들 ○○의 나이 벌써 장성하였사오나 아직 배필이 없었사온데 ○○군 ○○의 딸을 아내로 맞이
하기로 이미 의논이 되어 오늘 납채를 하게 됨에 감모하여 비창함을 이기지 못하와 삼가 주과를 펴오며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 아뢰옵니다.
납채서식(納采書式) 예문
○○동성명
○○洞○生員執事伏承
아무동성생원집사복승
尊慈 不鄙寒微 曲從媒議許以
존자 불비한미 곡종매의허이
令愛황室僕之男 ○○자有先人之禮 謹專人 納采
영애황실복지남 이름자유선인지례 근전인 납채
伏惟
복유
尊慈俯賜 鑑念不宣
존자부사 감념불선
본관 성명 年月○○ ○○○ 再拜
[해석] ○○동에 사는 ○○○이 ○○에 계시는 ○생원 어른께 업드려 글을 올립니다. 귀하께서는 저의
집안이 한미한데도 불구하시고 중매인으로 하여금 귀하의 귀여운 따님과 제 자식 ○○과의 혼인을 허락하여
주시니 천만 감사합니다. 이에 선인들이 행하여 오던 예법에 따라 혼인하기에 앞서 삼가 사람을 보내어
채단을 드리오니 우러러 바라옵건데 귀하께서 굽어살펴 주십시요.
사성서식(四星書式)
四
星 |
李
生
員
宅
下
執
事
入
納
|
甲
子
正
月
初
八
日
己
時
生 |
|
|
신부댁에서의 고유축(告諭祝)
維歲次○○○月○○朔○○日○○孝玄孫○○敢昭告于
유세차태세몇월초하루날일진삭○일일진효현손이름감소고우
顯高祖考學生府君
현고조고학생부군 (벼슬이 있는 경우는 학생 대신에 관직)
顯高租비孺人○○○氏 ○○之長女 年漸長成
현고조비유인본관성씨 이름지장녀 년점장성
已許○○之子 今日納采 不勝感愴 謹以酒果 用伸 虔告謹告
이허이름지자 금일납채 불승감창 근이주과 용신 건고근고
[해석]○○년 ○월 ○일 효현손 ○○은 삼가 묘위에 고하나이다.
○○의 장녀 ○○의 나이 점점 장성해가고 있어 이미 ○○의 아들에게 허혼을 하였아온데 오늘 납채가
당도하게 됨에 감모하여 비창함을 이기지 못하와 삼가 주과를 펴오며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 아뢰옵니다.
납채답서(納采答書)
慶州崔○○
경주최성명백
坡平尹參奉執事伏承
파평윤참봉집사복승
尊慈 不棄寒陋 過聽媒氏之言 擇僕之長女 作配
존자 불기한루 과청매씨지언 택복지장녀 작배
貴令允 弱息蠢禹又不能敎 旣辱采擇 敢不拜從 伏惟
귀영윤 약식준우우불능교 기욕채택 감불배종 복유
尊慈特賜 鑑念不宣 감념불선
○○年○月○日 慶州崔○○拜 [해석] 경주최씨 후인 ○○은 파평 후인이신 윤참봉의 집사님께 답서를
올리옵니다. 귀하께서는 저의 집이 한미한것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중매인의 말을 받아들이시어 저의 장녀를
귀하의 아드님과 짝을 정하여 주심에 사실은 제 딸 자식은 어리고 어리석은데다가 교육도 제대로 못
시켰아오나 이미 귀하의 채택하신바 되었음에 감히 절하고 쫓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엎드려
생각하옵니다.
그 예를 다 갖추지 못하옵나이다.
■
연길(涓吉)
연길(涓吉)이란 혼례의 의식을 거행할 길일(吉日)을 택하는 것이다. 즉 신랑의 사성(四星)을 받은
신부댁에서는 집안 형편, 신부의 생리일 등을 고려하여 택일한 날짜를 신랑댁으로 보내는 것이다. 연길
서식(涓吉書式)은 납채(納采)와 거의 같다연길(涓吉)이란 혼례의 의식을 거행할 길일(吉日)을 택하는
것이다. 즉 신랑의 사성(四星)을 받은 신부댁에서는 집안 형편, 신부의 생리일 등을 고려하여 택일한
날짜를 신랑댁으로 보내는 것이다. 연길 서식(涓吉書式)은 납채(納采)와 거의 같다
涓吉李生員宅下執事 入納
涓 吉
乾 甲子
坤 丁卯
奠휴 十五日 巳時 納弊 仝 辰時
大禮 丁亥 十二月 十六日 午時
于歸 仝 十八日 辰時 |
書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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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서간(涓吉書簡)
伏承華翰 感荷無量
복승화한 감하무량
謹未審玆時
근미십자시
尊?候萬重 仰慰區區之至 第女兒親事 旣承柱單 寒門慶事
존체후만중 앙위구구지지 제여아친사 기승주단 한문경사
涓吉錄呈 掌製回示如何 餘不備伏惟
연길록정 장제회시여하 여불비복유
尊照 謹拜 上狀
존조 근배 상장
○○年 ○月 ○日
全州后人 李○○ 再拜
[해석 편지를 받자오니 감사한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근자에 존체만중하시온지 문안드리옵니다. 저의 딸
혼사는 이미 사주단자를 받자왔음에 비천한 집안의 경사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읍니다. 결혼 날짜를 가려서
삼가 보내오니 신랑의 의복 치수를 알려주심이 어떠하시 온지요?
■
의양(衣樣)
연길서장(涓吉書狀)을 받은 신랑 댁에서는 다음과 같은 서장(書狀)을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의 치수와
함께 신부 댁에 보낸다.
伏承華翰 感荷無量
복승화한 감하무량
謹未審玆時
근미십자시
尊체候萬重 仰慰區區之至 第女兒親事 旣承柱單 寒門慶事
존체후만중 앙위구구지지 제여아친사 기승주단 한문경사
涓吉錄呈 掌製回示如何 餘不備伏惟
연길록정 장제회시여하 여불비복유
尊照 謹拜 上狀
존조 근배 상장
○○年 ○月 ○日
全州后人 李○○ 再拜
■
납폐(納幣)
납폐(納幣)란 신랑댁에서 신부댁에 혼인을 허락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보내는 예물이다. 문헌을
보면 은(殷)의 성탕왕(成湯王)이 혼례 때 폐백으로 백마(白馬)를 보낸데서 유래하였다. 백색(白色)은
서방의 빛이며, 추수절(秋收節)인 가을을 나타내는데서 숭상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은 함에는
예서(禮書) 즉 납폐서장(納幣書狀)을, 다른 하나에는 폐백(幣帛)을 담는다. 이 함을 봉할 때는
정결한 종이를 함 안에 깔고 함 밑에 물목을 넣은 다음 홍단(紅緞)을 담고 그 위에 청단(靑緞)을
올려 놓으며, 각 예물의 양쪽 끝을 청사(靑絲)와 홍사(紅絲)로 묶는다. 그런 다음에는 종이를 덮고,
싸리나무 가지나 수수대로 예물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고 함을 닫는 것이다. 이 함은 다시
홍보(紅褓)로 싸는데 네귀를 맞추어 싸매고, 남은 귀를 모아 매고는 종이를 감고 거기에 근봉(謹封)이라
쓴다. 그리고는 그 함을 지고 가기에 편하도록 무명 8척으로 된 걸방을 맨다. 이 함질 끈 중 3척은
땅에 끌리게 하고 그 나머지로 고리를 만들어 함을 지도록 하였었다. 그런데 이 함은 미리 준비된
봉채떡 시루 위에 올려 놓고 지고 가게하였음을 부연한다. 봉채떡은 흔히 봉치떡이라고도 하거니와 이것은
팥고물을 넣은 찰떡이며, 한 가운데에 대추와 밤을 박아서 찐 것이다.
이 함을 지고 가는 사람을 함부(函夫)라고 하는데 반드시 첫아들을 낳고 내외의 금실이 좋은 사람을
가려서 홍단형을 입게 하였다. 그리고 서너 사람은 햇불을 드는데, 이는 납폐는 어두울 때 행하는
관습이므로 햇불로 앞을 인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납폐(納幣)는 감사의 뜻을 표하는 예물이므로 빈부(貧富)의 형편에 따라 준비하였다.
사례편람(四禮便覽)은 『적어도 두 가지로 하되 많아도 열까지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였고, 예를 닦는
데도 재물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과 공경으로 하라. 』고 하였다.
납폐(納幣)가 도착하면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를 받는다.
① 먼저 신부댁에서는 화문석(花紋席)을 대청에 깔고 소반에 봉채떡을 올려 놓는다.
② 신부댁에서는 사자(使者)가 먼저 전하는 납폐서(納幣書)를 공손히 받아 집사(執事)에게 전해 주고,
예물을 받고 재배하게 된다. 이 때 사자(使者)는 자리를 피하고 답례(答禮)를 하지 않는다.
③ 신부댁에서는 사자(使者), 함부(函夫) 등 신랑집에서 온 일행에게 분수에 맞게 후의 대접한다.
④ 자리를 피하고 있던 사자(使者)가 다시 나아가 『이만 물러 가옵니다.』라고 청령(請令)하면
신부댁의 주혼이 답서를 건네준다.
납폐서(納幣書)
첨親 ○○洞 ○○○ 白 ○○郡 ○方 尊親執事 伏承 嘉命許以
첨친 ○○동 ○○○ 백 ○○군 관직 존친집사 복승 가명허이
令女 황室 僕之子 ○○ 玆有先人之禮
영녀 황실 복지자 이름 자유선인지예
敬遣使者 行納幣之禮 伏惟
경견사자 행납폐지례 복유
尊慈特賜 鑑念不宣
존자특사 감념불선
○年 ○月 ○日 ○親 ○○再拜
※ 납폐물목서식(納幣物目書式)
物目
玄 壹段 「靑緞」
종 壹段 「紅緞」
際
年 月 日
○○ 后人 ○○○ ○○○ 「手決」
납폐답서(納幣答書)
첨親 ○○洞 ○○○ 白
첨친 ○○동 ○○○ 백
○○洞 ○○官 尊親執事 伏承
○○동 ○○관 존친집사 복승
嘉命 委禽寒宗 顧惟弱食 敎訓無素 切怨不堪 玆又蒙順先典 황以重禮
가명 위금한종 고유약식 교훈무소 절원불감 자우몽순선전 황이중례
尊玆特賜
존자특사
鑑念不宣
감념불선
○年 ○月 ○日 ○親 ○○ 再拜
[ 해 석 ]보잘 것 없는 ○○동에 사는 ○○○은 ○○동 ○○ 관직의 존칭의 집사를 엎드려 받들면서
사룁니다. 가명을 입어서 저희들의 가세가 힘겨웁고 교훈도 변변하지 못함에도 혼사를 기꺼이 허락하여
주심에 두렵고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이에 다시 선인의 예에 따라 납폐의 의식을 베풀어 주시니, 딸을
보내야 할 저의 처지에서는 몸 둘바를 모르겠으며 뭐라 할 말을 얻지 못하겠습니다. 높으신 사랑으로
특별히 내려주신 예물을 마음 깊이 느끼오나 다 나타내어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
친영(親迎 or 婚行)
친영(親迎)이란 신랑이 성혼(成婚)하기 위하여 신부댁에 가서 전안(奠雁)하고 신부를 맞이하여 오는
의례 절차이다. 이조 중엽말 이전(李朝中葉末以前)에는 신부댁에 머물러 있는 풍속이 많았다. 그러다가
중종무인(中宗戊寅, 一五一八)년에 전교(傳敎)를 내려 관민(官民)으로 하여금 친영례(親迎禮)를
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 점점 법이 달라져 반친영법(半親迎法)으로 바뀌었다. 반친영법(半親迎法)은
신부댁에서 교배 합근(交拜合근)하고 다음 날 우례(于禮)하여 현구고례(見舅姑禮)를 행하는 것이다. 이
법이 오늘 날까지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친영(親迎)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친영(親迎), 하루 전에 신부댁에서는 사인(使人)으로 하여금, 혼례 당일에 사용할 물건을
신랑댁으로 보낸다.
● 전욕(氈褥 : 잠자리용 요) 2개 |
● 자리(席 : 寢席 2개) |
● 이불(衾寢 : 이불) 2채 |
● 벼개(枕) 2개 |
● 유막(포장 혹은 평풍) |
● 의복 약간 |
● 협(광주리) |
● 상자 ● 약구(자물쇠) |
2. 신랑댁에서는 모든 기구(器具)를 다음 설위도(設位圖)와 같이 진설하고, 이른 아침에 신랑이
성복(盛服)을 차리고, 주혼자와 함께 사다에 나아가 납채 때와 같은 의식으로 선조에게 고한 연후에
신부댁으로 간다. 예(禮)에 이르기를 이른 아침이라 하나, 거리의 원근에 따라 하루 또는 며칠전에
떠나기도 한다. 이 때 예장을 갖추는데 필요한 제구(際具)로는 사모(紗帽), 단령(團領:관복), 품대(品帶),
흑화(흑靴:수 혜자) 등이다.
3. 대례(大禮)의 며칠 전 또는 전날 주혼자는 아들에게 훈계(訓戒)하는 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 먼저 탇자나 상위에 술병과 술잔을 준비하여 당(堂)의 동쪽에서 약간 북으로 치우치게 놓아둔다.
② 주혼자(신랑의 아버지)는 의복을 정제(整齊)하고 당(堂) 동쪽에서 서향하고 서고, 장가들 신랑의
자리는 당(堂) 서북편에 남향으로 편다.
③ 신랑은 서쪽 계단으로 올라가 펴놓은 자리의 서남쪽에 선다.
④ 집사가 잔에 술을 부어들고 자리 앞으로 나아가면 신랑은 재배하고 자리 위에 올라 집사에게서 잔을
받아들고 꿁어 앉아서 제주(祭酒)한 뒤 조금 마신다.
⑤ 신랑은 집사에게 잔을 돌러주고는 다시 재배한 뒤 그의 아버지 앞에 나아가 꿇어 앉는다.
⑥ 아버지는 신랑이 정좌(定座)하면 "네 가거든 신부를 맞이하여 우리 집의 종사(宗事)를 잇도록 할
것이며, 항시 힘쓰고 공경하여 가문에 욕됨이 없게 하라"는 내용의 훈계를 한다. 그러면 신랑이 될
아들은 "『예 』지당하옵신 분부이십니다. 소자 오직 감당치 못할까 두려우나, 어찌 아버님의 말씀을
잊어 버리겠습니까"하는 요지의 답을 한다.
⑦ 신랑될 사람은 다시 어머니에게도 가서 인사를 드리면, 어머니도 아버지의 훈계를 보충해서 여러
가지로 훈계하게된다. 특히 어머니는 첫날밤을 원만하게 치르도록 성지식(性知識)에 관한 것도 이 때에
가르쳐 준다.
4. 대례(大禮)를 치르기에 앞서 신랑의 경우 처럼 신부는 아버지에게서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
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시집이 곧 너의 집이며, 하늘 천짜(天)위로 더 높게 튀어 나오게 쓴 글짜가
지아비부(夫)짜이니, 공경하고 삼가면서, 주야로 시부모님의 영을 어기지 말며, 그 집안의 가풍을 하루
속히 배우고 익혀야 하며, 동시(同媤)들 끼리도 차례를 지키며, 신랑 형제끼리의 우애를 더욱 돈독케
하도록 연행에 조심하여 여자로서의 예를 다하여라.』하는 요지의 교훈을 듣는다. 또한 어머니는 특히
『첫날밤의 예법, 인사, 몸가짐, 식사 』에 이르기까지의 소상한 절차를 가르켜 준다.
5. 혼례(昏禮)는 글자 그대로 해가 지고나서 올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時)를 맞추어 오는 혼행을
맞기 위해 신부댁의 하인들이 초롱 불을 밝히고 10리 또는 20리까지도 마중을 나왔었다.
6. 대례(大禮)의 당일에 신부는 원삼(圓衫 : 연두 빛 깃에 자주 빛 깃을 달고 색동을 달아 지은
부녀자의 예복류로서 홑것과 겹것의 두 가지가 맀음)에 족두리(부녀자가 예복을 입을 때에 머리에 얹던
검은 화관의 한 가지)를 쓰고, 양쪽 볼에 연지를 찍고, 청색 저고리에 홍치마를 받쳐 입고, 그 위에
다시 활옷을 입는다. 그리고는 수모(手母)곁에는 수모결시자라 하여 수모를 따라 다니면서 견습하는
여자가 따라 붙는다. 신부가 성복(成服)을 마치면 사당고유를 하게 된다.
7. 신부댁에서는 사처(舍處)를 마련해 놓는다. 사처란 신랑이 대문밖 서쪽에서 타고 온 말이나 나귀를
내리면 잠시 쉴 곳이다. 사처는 이웃집의 깨끗한 사랑방을 빌려서 이용하기도 하고, 또는 장막을 쳐서
모셔 놓기도 한다.
8. 신랑은 말이나 나귀를 타고 신부댁으로 간다. 수행은 신랑의 존속친(尊屬親 : 보통 백부나 숙부
중의 한분)이 혼행(婚行)을 거느리게 된다. 이 때 안부(雁夫)는 전안(奠雁)에 쓰는 기러기(生雁
또는 木雁)를 색보(色褓)에 싸들고 혼행(婚行) 앞에서 신랑을 인도하게 된다.
※ 신랑 신부의 사당고축
維歲次 ○○年 ○月 ○○朔 ○日 ○○ 孝玄孫 ○○ 敢昭告于
유세차 ○○년 ○월 ○○삭 ○일 ○○ 효현손 ○○ 감소고우
顯高祖考學生府君
현고조고학생부군
顯高祖비孺人 ○○ ○氏 ○○之子 將以今日
현고조비유인 본관 성씨 이름지자 장이금일
親迎于 ○○ ○○郡 ○○ 不勝感槍 謹以 酒果用伸 虔告謹告
친영우 관직 ○○군 성명 불승감창 근이 주과용신 건고근고
年 月 日
[ 해 석 ] 효현손 아무개는 감히 고조조비에게 고하나이다.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장차 오는
아무게씨에게 친영하려 가겠기에 감창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주라를 펴 놓고 정성껏 고하나이다.
※ 신부의 사당 고축은 신랑의 것과 비슷하나 某之子가 某之女로, 親迎于가 歸于로, 그 아래 신부댁
관직, 본관, 이름이 신랑댁 관직, 본관, 이름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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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안례(奠雁禮)
전안례(奠雁禮)란 신랑이 초례청(醮禮廳)에서 신부와 혼인의 대례를 거행하기에 앞서 신랑이 신부댁에
목안(木雁)을 가지고 가서 상(床) 위에 올려 놓는 의식을 말한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천상북두구진(天上北斗九辰) 중에 자미성군(紫微聖君 : 紫微란 北斗星의 북쪽에 있는 星座인데, 天宰가 거처하는 곳이라 한다. 그러므로 天宰를 紫微聖君이라고도
한다.)은 인간의 수복(壽福)을 맡은 천재(天宰)이기 때문에 인륜대사인 혼인도 그 자미성군이 주선하여
천생연분을 맺어 준 것으로 믿고 먼저 기러기를 선물로 하여 예를 드리고, 기러기를 본받아
백년해로(百年偕老)할 것을 맹세하여 수복(壽福)과 자손의 번창을 빌게된데서 온 풍속이다. 이때
기러기를 사용하는 까닭은 첫째도 따뜻한 봄볕에 대기에 감돌 무렵이면 기러기는 북녘으로 날아갔다가
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 찾아오는 철새로서 음양이 승강(升降)과 왕래(往來)하는 천리(天理)를
따르는 영물(靈物)이며, 둘째는 기러기는 금수(禽獸)중 가장 믿음(信)과 절개(節介)가 있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분별이 있어서, 한 쌍이 날으다가 물위나 땅위에 내릴 때도 수컷이 먼저 내린
연후에 암컷이 내려와서 만난다는 것이며, 한 쌍 중 그 하나가 없어지면 다시 짝을 구하지 아니하고
수절(守節)하여 언제나 홀로 지낸다고 하며, 셋째로 장유(長幼)에 엄격한 차례를 지켜 날아갈 때도
안행(雁行)이라하여 불난(不亂)하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이유로 기러기를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예식절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신랑이 신부댁에 당도하면 신부댁에서 지명한 예의법도에 밝은 사람(원칙적으로 신부쪽의 주혼자가
나와서 정중하게 맞이해야 하는데, 시속의 변천에 따라 신부댁의 오빠나 친척 중의 젊은이가 나와서
맞았었다.)으로 찬인(贊引)을 삼아서 문전에서 신랑을 맞아 세번 읍하면 신랑도 이에 따라 세번 읍한
다음 찬인(贊引)을 따라 전안석(奠雁席)으로 간다. 원칙대로 주인이 맞이할 때는 신랑이 대문에
기대서서 안부가 안아 온 목안을 머리가 왼편으로 향하게 받아 안고 대청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주혼자는
동계(東階)로 오르고 사위는 서계(西階)로 올라 북향으로 끓어 앉아서 목안을 옆에 놓고 시중이 그
가러기를 받으면 신랑은 일어서서 재배하는 데 주혼자는 답배를 아니한다. 이 때 신랑의 재배가 끝나기
전에 신부댁의 하님이 목안을 집어가는 지방 풍속도 있다.
2. 이 목안(木雁)은 초례상(醮禮床) 앞에 놓인 전안상(奠雁床)에 올려 놓는 데 그 위치는 신부가
있는 방문 앞 마당에다 병풍을 치고 놓은 것이 관례이다.
3. 이런 절차가 끝나면 신부댁에서 가족을 대표하여 한 여인이 나와서 안상에 놓여 있는 목안을
안아다가 신부가 있는 방으로 가서 신부 앞에 놓는다. 그런데 옛적에는 대사당일(大事當日)에 신랑이
신부댁에 가서 전안례(奠雁禮)만 하고 신부와 같이 집으로 돌아와서 교배례 (交拜禮) 및 합근례를
행하는 경우도 있었음을 참고로 부기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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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배례(交拜禮)
교배례(交拜禮)란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대면하여 서로 예를 교환하는 의식이다.
예법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던 과거에는 중매를 통하여 정혼(定婚)되는 절차에서도 완전히 소외되다
시피하여 신랑은 신부가, 신부는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던 것임으로 이 교배례는 그 궁금증을
풀게되는 가장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고, 또한 이런 의미에서 가장 뜻이 깊었다고 할 수 있겠다.
교배례의 식장은 대청이 넓으면 그 대청에 또는 마당에 차일을 치고 마련하기도 한다. 식장 장치는
원칙적으로 남북(南北)으로 놓으나 동서(東西) 또는 위치에 따라 편리하게 놓아도 무방하다. 다만,
교배상(交拜床)을 남북(南北)으로 놓으면 병풍을 동서로 치고, 동서(東西)로 교배상을 놓으면 병풍을
남북으로 치게 된다. 한 쌍(자웅(雌熊)을 양쪽으로 갈라 놓는다. 또 세수대야 속에 수건을 깔고 그
위에 물 두 종지를 놓아둔다. 초례상(醮禮床)의 진설은 지방과 가풍에 따라 다른 엄격한 규정이 없으니
풍속되로 하면 되겠다. 교배례의 의식 절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교배상(交拜床)을 사이에 두고 신랑은 동편에, 신부는 서편에 서는 것이 원칙이다.
2. 초래청(醮禮廳)에서 동향하여 서면 두 여인이 성복(盛服)하고 두 손을 합쳐 이마에 댄 신부의
좌우 팔을 부축하여 예청(禮廳)으로 나온다.
3. 신부가 나와 서면 신랑은 정면으로 서향하여 서고, 잠시 후 신랑이 무릎을 끓고 앉으면 신부는
부축을 받으며 신랑에게 재배한다.
4. 신부가 재배한 후 끓어 앉으면 신랑이 부축을 받아 일배(一拜)하고 끓어 앉는다.
5. 신부가 또 재배하고 앉으면 신랑이 또 일배(一拜)하고 끓어 앉는다. 즉 신부의 절 두 번에
신랑은 절 한번으로 답례하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끝나면 신랑은 신부에게 읍하여 끓어 앉으며, 신부도 읍하고 따라 앉는다. 시자(侍者)가
미리 준비하여 두었던 대야를 따로따로 신부에게 주면 신랑과 신부는 종지에 담겨 있는 물로 손을 씻는
흉내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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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근례
합근이란 신랑과 신부가 서로 바꾸어 마시는 표주박처럼 생긴 술잔이란 뜻이다. 이것이 오늘날 바뀌어
혼례(婚禮)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위와 같은 교배례의 의식이 끝나면 이어서 이 합근례의 의식을
거행한다. 예전에는 신부를 맞이하여 신랑 집에서 행하였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대례(大禮)를 진행하는 창홀자(唱笏者)가 합근분치서부지전(合근分置서婦之前)하고 말하면 신랑과
신부를 시중드는 수모(手姆)와 시자(侍者)가 표주박처럼 생긴 술잔을 신랑과 신부 앞에 갖다 놓는다.
2. 이 때 창홀자(唱笏者)가 다시 시자짐주(侍者斟酒)라고 하면 시중드는 사람은 신랑과 신부 앞에
놓여있는 술잔에 술을 따룬다.
3. 다시 서읍부거음(서揖婦擧飮)하고 창홀 한다. 그러면 신부 측의 수모가 신부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들어 신부에게 주면 신부는 잔을 받아 술을 마시지 아니하고서 다시 그 술잔을 수모(手姆)에게
건네준다. 수모는 그 술잔을 받아 신랑 측의 시자(侍者)에게 건네준다. 그러면 시자가 이 술잔을 받아
신랑에게 주게 된다. 술잔을 받은 신랑은 제주(祭酒 : 땅위에 조금 기울려 붙는다.)하고, 약간 마신
후 술잔을 도로 사자에게 준다. 시자는 이 술잔을 신랑에게서 받아 상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신랑
앞에 미리 놓여 있던 술잔을 받아 다시 시중드는 시자에게 주면 시자가 이를 받아 신부 측의
수모(手姆)에게 돌린다. 수모(手姆)는 이 술잔을 받아 신부에게 준다. 그러면 신부는 그 술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는 채 하고는 수모에게 돌려준다. 그러면 수모는 신부에게서 술잔을 받아 상위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신랑과 신부가 술잔을 서로 한 차례씩 바꾸어 환음(歡飮)한 것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합환주(合歡酒)이다.
4. 술잔의 교환이 끝나면 진찬하고 창홀한다. 그러면 사자와 수모는 각각 세 차례에 걸쳐 신랑과
신부에게 안주를 집어 준다. 이 때 신랑과 신부는 받아먹거나 아니면 그냥 받아 상위에 놓아도 된다.
5. 이런 철차가 끝나면 집사는 필례(畢禮)라고 창홀한다. 즉 대례(大禮)가 끝나는 것이다. 예필선언(禮畢宣言)이
있으면 신랑 신부는 각각 수모(手姆)와 시자(侍者)의 인도를 받아 자기의 처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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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화촉(洞房花燭)
초례(醮禮 : 신랑 신부가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나뉘어 앉아서 합환주(合歡酒)를 서로 마시면서
백년해로를 의식으로서 혼인절차 중 가장 중히 여긴 의식)를 마친 후 신랑 신부가 첫날 밤에 한방에서
함께 지내는 방을 신방(新房)이라 하고, 이를 동방화촉(洞房花燭)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청사초롱(靑紗燭籠)
불을 밝히고 시녀가 좌우로 신랑을 인도하여 신부방으로 안내하였다.
고례(古禮)를 보면 『신랑의 자리는 신부의 하녀가 신방의 동편에 펴고, 신부의 자리는 신랑의 하인이
서편에 펴고, 신랑의 벗은 옷은 신부의 하녀가, 또 신부가 벗은 옷은 신랑의 하인이 받고, 촛불을
물리면 하녀만이 문밖에서 모시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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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방(守新房)
첫날밤 신랑, 신부가 합금(合衾)하는 화촉동방의 앞뒤 창문밖에 부녀자들이 모여서는 창구멍까지 뚫고
신랑 신부의 대화를 엿듣느라고 온갖 법석을 떠는 습관이 오늘에까지 전해오고 있으나, 이것은 애당초
남녀칠세부동석(南女七歲不同席)이라는 엄격한 유교교육에서 이성교제(異性交際)가 전혀 없다 싶이 한
처지에 어린 자식을 장가
들인 부모의 마음이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나머지 혹시 불측(不測)한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하는 염려에서
집안 부녀자로 하여금 은밀히 신방을 지켜보도록 한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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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례(于禮)
우례(于禮)란 신부가 시집으로 가는 신행(新行)의 의식이며, 이를 우귀(于歸)라고도 한다. 즉,
신부가 정식으로 신랑집에 입주(入住)하는 의식이다. 옛날에는 초례(醮禮)후 수개월 또는 수년씩 있다가
우귀(于歸)하기도 하였으나, 근자에는 첫날밤을 신부집에서 지낸 다음날이나 또는 사흘후에 신랑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신행때는 신부의 아버지나 친척중에서 가까운 분이 신부를 데리고 간다. 신부가
시집으로 가기 위하여 천장을 떠날 때는 신부의 시중을 들어 주는 수모(手姆)가 신부를 인도하여
교자(轎子 : 가마)가 있는 데로 나오면 신랑은 미리 가마 문을 열고 읍한체 기다리고 있는 것이
관례이다. 이때 수모(手姆)가 『배운 것이 부족하여 예를 잃을까 염려됨니다.』라고 말하면서 신부가
가마에 들어 가는 것을 도와 주어야 한다. 가마안에는 미리 요강을 준비해 놓는다. 또한 혼구(혼수)
일체를 같이 운반한다. 신랑은 말이나 가마(四人轎나 二人轎)를 타고 앞서고 신부를 태운 가마는 그
뒤를 따른다. 이리하여 신부의 가마가 시집에 도착하면 신랑이 먼저 내려 가마 앞에 읍하고 서 있을
때, 신부는 가마에서 내려 미리 마련한 방에 들어가 쉰다. 그런 다음 신랑은 부모에게 무사히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