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 생애가 길건 짧건 결국은 죽음의 길로 돌아간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였지만 그 생명이 죽는다는 것은 일생 동안 함께 살아온
배우자, 아들 딸 등 모든 주위의 사람들과 영원히 작별을 고하고 황천(黃泉)으로 가는 것이다. 한번
간 죽음의 길에서는 되돌아 오지 못함에 마지막 떠나는 고인을 위하여 어떠한 정성이라도 아끼지 않고
예를 다하여 장사를 치러야 한다. 곧 상례(喪禮)란 사람이 죽어서 장사(藏事) 지내는 의식절차로써,
여기에는 임종(臨終)에서 염습(염襲), 발인(發靷), 치장(治葬), 우제(虞祭), 소.대상(小大祥)
및 복제(服制)까지의 행사절차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떠나 보내고 그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는 뜻에서 특별한 예법을
마련하여 그 죽은이의 유체를 엄숙하고 공경스럽게 장사 지내도록
규정하여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소흘함이 없도록 예(禮)로써 가르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성인들의 유풍(遺風)과 성인들이 마련한 예법을 뿌리로하여 현실에 적합하도록 운용하면 유감없는
장래를 모실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소개하는 재래식 장례는 우리 고유의 전래되어 온 조상들의 풍속을 이해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현행 가정의례준칙과 비교하여 부모 조상에 대한 경건심(敬虔心)을 가져야만 그에 따라 살아있는 부모,
형제, 처자들과의 효도와 우애와 사랑의 미덕을 길러 나갈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에 뜻이
있다.
■
초종(初終)
1. 신질(愼疾) : 신질이란 병환(病患)을 삼가 받는다는 뜻이다. 어버이께서 병환이 나시어 와석(臥席)하면
효성을 다하여 이를 간호하다가, 환자의 병세가 위중하여 회춘(回春)할 가망이 없을 때에는 환자를 중당(안방)으로
옮긴다. 이를 또한 천거정침(遷居正寢)이라 한다. 다만, 부모 이상의 어른에게만 이 같이 하고, 부모
이하 다른 가족의 경우에는 원래 거처하던 처소에서 운명(韻命)하여도 무방하다. 정침(正寢)은 제사나
일을 하는 안채의 방을 말하는데 원래 정(正)이란 글자는 남향의 창문이 난 밝은 방의 뜻이 있음으로
지금의 안방이라고 생각하면 무방하다.
加新衣 屬광 |
가신의 속광 |
東首於北우下 徹衣 |
동수어북우하 철의 |
外內安靜 外內皆掃 |
외내안정 외내개소 |
[해석] 안팍을 정숙히 하고 깨끗이 소제하며, 환자의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여 북쪽창
아래에 편하고 바르게 눕히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 입힌 후 새
솜을 코 밑에 붙인다.
※ 솜을 코 밑에 붙이는 이유는 병자가 완전히 숨을 거두었는지 여부를 확인함이다.
병자의 코 밑에 붙인 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 가족은 울음을 참고 있다가 완전히 숨을 거둔 후에 곡성을 내는 것이 옳다. |
이때 정결한 의복으로 갈아 입혀 드리고 북쪽 창문 아래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여 눕혀 드리고 자식은
그곁을 떠나지 않는다. 병풍으로 머리맡을 둘러 드리고 가족을 방 안팍을 깨끗이 청소한다. 비파나
거문고와 같은 악기가 있다면 이것을 모두 치운다. 방 안팎을 청소함은 이 때 아직 돌아가신 것이
아니므로 마지막으로 문병을 오는 사람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환자를 평상시 잠자듯 동쪽으로
머리를 두게 함은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효자의 애뜻한 정신을 표시하는 것이다. 물론 평상시 때에도
그러하였겠지만 어린이들이 환자의 머리맡을 지나는 것을 엄금해야 하며 가족은 아직 엄숙하고 슬픈
마음으로 조용하게 행동하며 외지에 나가 있는 환자의 아들 딸들에게 위도(危篤)의 전보를 치는 것도
이때이다.
2.유언(遺言) : 병세가 위급한 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은 침착한 태도로 주위를 조용히 하고 운명을
기다리는데 이 때 물어 볼 일이 병자에게 있으면 병자가 대답하기 쉽게 간추려서 묻고 대답을 기록해야
한다. 또한 병자 자신이 자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니 그것은 교훈(敎訓) 혹은
재산분배(財産分配)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유언이라 한다. 녹음기가 있으면 녹음을 하는 것도
생존시의 육성을 들을 수 있어 한층 의의가 있을 것이다.
3.임종(臨終) : 임종은 부모가 운명(韻命)하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드리는 일이다. 임종은 예견할 수
없는 일이므로 집안에 병세가 위중한 노인이 계실 때에는 급할 때 기별 받을 수 있도록 출타시(出他時)에는
항상 거처를 주위의 사람이나 가족에게 알려두어 속히 연락 받을 수 있게 한다. 또한 환자가 있는 방은
물론이고 운명하신 후 모셔 둘 방에는 잔세간을 치우고 정결하게 청소하고, 임종시에 갈아 입혀 드릴 옷
한벌을 준비하여 둔다. 이 옷은 평소에 입던 옷으로 흰색이나 엷은 색의 옷이 좋을 것이다. 한편
가족들은 황망중에도 깨끗하게 몸가짐, 옷가짐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유의하여 두는 것이 옳다.
4.정제수시(整齊收屍) : 운명하면 임종을 모신 분들이 우선 조용히 명복을 빌어드린 다음 침착한
태도로 돌아가신 분의 몸과 수족을 반듯하게 정제수시(整齊收屍)하고 북침(北枕 : 머리를 북쪽에 둔다는
뜻)으로 슬픔을 다하여 백포(白布)를 씌우고 홑이불을 머리까지 덮어 둔다. 그러면 온 가족이 비로소
슬픔을 다하여 곡한다. (이때 사용한 이블은 나중에 대렴(大斂)시에 사용한다.)
정제수시(整齊收屍)의 요령과 차례는 다음과 같다.
먼저 눈을 곱게 감도록 쓸어 내린다.
준비해 두었던 햇솜으로 입과 코와 귀를 막아 피가 쏟아지지 않도록 하며, 시체가 굳기 전에 손발을
고루 주물러서 펴고 백지나 베천으로 좌우 어깨를 단단히 동이고(綴), 두 팔과 손을 곱게 펴서 배
위에 올려 놓되, 남자는 왼손을 위로 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하여 베천으로 동이고, 이가 서로 닿지
않도록 버티어주고, 두 다리도 곱게 펴서 두 발끝을 위로 가도록 똑바로 모아 가지고 백지나 베천으로
동여서 어그러지지 않게한다. 이때 깨끗한 거즈나 탈지면에 알콜을 묻혀 얼굴, 손, 발을 우선 깨끗하게
닦아서 좋은 인상, 좋은 모습으로 남도록 한다. 그리고 백포(白布)로 얼굴을 덮거나 홑이불을 머리까지
씌운다. 그런 연후 타향에 있는 유자녀(遺子女)나 형제 등 친척에게 사망하였다는 조전을 보낸다.
5.고복 : 고복은 초혼(招魂)이라고도 하며 사람이 죽어면 혼이 몸에서 떠난다 하여 그 혼백(魂魄)을
다시 불러 몸에 붙게 한다는 뜻의 절차로서 예문(禮文)에서는 「복(復)」이라고 한다. 수시(收屍)가
끝난 뒤에 곧 복(復)을 부르는데, 시체를 대면 안한 사람으로서 채반에 밥 세그릇, 짚신 세 컬레를
담아 대문 밖에다 놓고, 여상(女喪)에는 여자가, 남상(男喪)에는 남자가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던
옷, 즉 즉 남자는 두루마기나 속적삼을, 여자라면 속적삼을 가지고 앞 처마로 해서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허리를 잡고 북향하여 옷을 휘두르며 크고 긴 목소리로 망인이 남자라면
그 주소, 직함(관직), 성명을 여자가 망인이라면 주소 및 본관과 성씨를 외친 뒤에 『복·복·복』하고
세 번 부른다. 옷은 지붕 위에 놓아두거나 갖다가 시체위에 덮고 홑이불로 씌운다. 초혼(初魂) 즉
복(復)을 부르는 까닭은 혼(魂)이 몸에서 분리되어 허공(虛空)에 떠서 어디로 갈지 향방(向方)을
몰라 방황하는 것을 불러 시신(屍身) 곁으로 돌아오도록 하려는 방법이며 허공에 뜬 혼령은 자기가 입던
옷을 보고 그 옷을 따라 자기으 시신에게로 되돌아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을 세 번 거듭 부르는
까닭은 『셋에 이루어 진다.』(三成)는 원리와 하늘(天)과 땅(地)과 공간(空間)에서 온다 하여 세
번 부르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풍속에는 사람이 죽으면 역시 시체를 대면하지 않은 부인을 시켜 밥을
지어 세그릇을 문앞에 놓고 또 세 켤레의 짚신과 약간의 돈을 놓아둔다. 이것은 속칭 사자밥(使者飯)이라고
하는데, 이는 죽은 사람을 데리러온 명부(冥府)의 차사(差使)에게 주는 밥과 노자(路資)와 신이라고
한다. 이렇게 차사(差使)를 대접해야만 죽은이의 영혼을 곱게 인도하여 저승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6.발상(發喪)과 상주(喪主) : 발상(發喪)이란 상(喪)을 공표(公表)한다는 뜻이다. 집안에서는
먼저 상제(喪制 : 상을 당한 자손) 중에서 주상(主喪)을 정하고 역복(易服)을 한다. 즉 상주는
말할 것도 없이 죽은 사람의 장남이 되고, 만일 장남이 죽고 없는 경우에는 장손이 아버지 대신으로 맏
상주가 되어 승중상(承重喪)으로 주상이 된다.
옛날 발상(發喪) 때는 아들, 딸, 며느리가 머리를 풀었다. 그러나 출계(出系 : 양자간 것)한
아들과 출가(出家)한 딸은 머리를 풀지 않고, 비녀만 빼었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역복(易服)을 하고 머리를 풀고 곡을 하여야 비로소 발상(發喪)이 된 것이다. 요즈음에는
상가(喪家)의 표시를 기중(忌中, 喪中, 喪家) 이라고 써서 문밖에 붙이고 발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7.호상(護喪) : 호상(護喪)이란 상중(喪中)의 초종범절(初終凡節)을 맡아보는 사람이다. 따라서
호상이 될 자격은 복인(服人)이 아니며 친족이나 친지중에서 상례(喪禮)에 밝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위인(爲人)이 침착하고 무게가 있어야만 일체의 장례절차에 있어 원만히 처리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호상이 되어 줄 것을 응락하면 주상과 의논하여 사서(司書 : 문서를 책임질 사람. 금전출납,
조객의 출입을 기록함), 사화(司貨 : 喪財 일체의 물품과 금전을 관리 담당하여 상주 대신 출납
행위를 하는 사람), 상례(相禮 : 조상의 진행을 맡은 사람), 축관 등을 추가로 지명하여 호상의
일을 보좌케 한다. 이 때부터 호상(護喪)은 지필묵(紙筆墨)과 백지로 엮은 조객록(吊客錄 : 조객의
출입을 기록하는 장부), 조위록(吊慰錄 : 母喪인 때의 조객의 출입을 기록하는 장부), 부의록(賻儀錄
: 부조하는 금액이나 물품을 기록하는 장부), 사화록(司貨錄 : 상례의 준비를 위하여 지출되는 금전
출납부)을 준비하여 각 책임자가 기록하게하여 초종 비용에 낭비가 없도록 잘 관리하게 지휘 감독하여야
한다.
8.부고(訃告) : 장일(葬日)과 장지(葬地)가 결정되는 즉시 호상(護喪)이 사서(司書)를 시켜
상주를 대신하여 망인의 친척과 친지들에게 사망의 부음(訃音)을 알린다.
■
습(襲)과 염(斂)
현재는 습(襲)과 염(斂)을 같은 날에 병행(倂行)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옛날에는 습(襲)과
염(斂)을 구분하여 행하였으며 염(斂)을 소렴(小斂)과 대렴(大斂)으로 구분된다. 습(襲)이란
수의(壽衣)를 입히기 위하여 향탕수(香湯水 : 향나무 삶은 물)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정결하게
씻기는 것인데, 남자는 남자가, 여자는 여자가 씻긴다. 소렴(小斂)이나 대렴(大斂)은 수의(壽衣)를
입힌 다음 매장포(埋葬布)로 시신을 쌓아 단단히 동여매는 절차이다. 이 때 필요한 물건은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관습이다.
1.수의(壽衣) : 연만한 노인이 계신 집안에서는 윤년(閏年)이나 윤달(閏月)을 택하여 수의(壽衣)를
준비하여 둔다. 당상(當喪)후에 급히 수의(壽衣)를 만들려면 좋게 만들지 못하게 되고 또한 시간이
걸려서 치장계획(治葬計劃)에 차질이 오는 경우도 있다. 친척, 마을이나 이웃마을 중에서 잘 만드는
분을 모시고 만드나, 근래에는 주단집이나 장의사가 알선하는 곳에서 준비한다.
2.소렴(小斂) : 소렴(小斂)은 시신에 수의를 입히는 절차로써 사망한지 2일째 되는 날의 아침에
행한다. 『날이 밝으면 집사가 소렴에 쓸 옷과 이블을 준비해 놓는다.
이때 영좌에 새 음식을 바궈 올리고서 소렴을 한다.』
3.대렴(大斂) : 대렴(大斂)은 소렴(小斂)이 끝난 뒤에 시신을 입관(入棺)하는 의식이다.
대렴(大斂)은 소렴을 한 이튿날에 하는 것이니 죽은지 3일만이다. 먼저 관(棺)을 들어다가
시상(屍牀) 서쪽에 놓아두고, 집사는 관 밑바닥에 칠성판(七星板)을 깔고 지금(地衾)을 깐다. 다음
대렴포(大斂布) 30자에 횡포 세폭을 놓고 이것을 각각 반씩 쪼개면 좌우가 각 여섯쪽이 되며, 그
다음 장포(長布) 한폭을 놓고 양 끝을 셋으로 쪼갠 후 그 위에 대렴금(大斂衾)을 펴놓고 소렴(小斂)한
시신을 그 위에 모신다. 그리고 먼저 발을 여미고 다음에 머리를 여미되 먼저 왼편을 여민 후 나중에
오른편을 여미고 다시 장포를 세매로 묶고 횡포를 매는데 모두 다섯 매로 묶으며 한 쪽은 그냥 놓아
둔다. 그 다음 시신을 들어서 관 속에 넣는데 조금도 기울지 않게 한다. 이 때 다섯 주머니에 담은
머리털, 손톱을 관(棺) 상하(上下)에 넣는다. 또 그밖에 비어 있는 곳은 망인의 옷을 말아서 채우고
약간의 폐물을 넣는 이도 있다. 그러나 금(金)이나 보배스러운 물건을 관 속에 넣어서 도둑을 맞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음으로 천금(天衾)을 관 속에 덮고 상주와 주부가 슬픔을 다해서
곡한다. 이 때 목수를 불러 관 뚜껑을 덮고 은정(나무못)을 박는다.
4.영상(靈牀) : 대렴(大斂)이 끝나면 관에 구의(柩衣)를 덮은 다음 먼저 자리로 정좌하게 하고 그
앞에 병풍을 치고 교의(交椅)에 사진이나 혼백(魂帛)을 모시고 그 앞에 제상(祭床) 또 그 앞에 향안(香案),
향로(香爐), 향합(香盒), 모사그릇(茅沙器), 촛대(燭台) 한쌍, 띠, 등매( 薦) 베개 수건 등을
준비하고 평소에 사용하던 거울 빗, 담뱃대, 쌈지등을 놓아두기도 한다.
5.혼백(魂帛) : 혼백(魂帛)은 신주(神主)를 만들기 전에 마포(麻布)나 백지로 접어서 만드는
임시의 신위이다. 근래에는 신주(神主)를 만들지 않는 경우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빈소(殯所)가
있다면 2년간 빈소에 모셨다가 대상(大祥)이 지난 후에 묘소(墓所)에 묻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접은 혼백에 5색실로 만든 동심결(同心結)을 끼워 혼백함에 넣어 모시는 것이다. 깨끗한 백지로 고인의
옷과 지방을 써서 함에 넣기도 하고 사진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6.공포(功布) : 공포는 상여의 길잡이로서 도로(道路)의 높고 낮음이 있을 때, 이 공포로서
알린다. 이 공포를 사상례(士喪禮)에서 말하기를 길이는 석자로 하되 대공포(大功布)로 한다고 되어
있다.
■
장일(葬日)과 장지(葬地)
1.장일(葬日) : 상(喪)을 당하면 먼저 장일(葬日)을 정한다. 상주나 자손들이 먼 곳에 있어 미쳐
오지 못한 사정이 있을 때는 7일장을 하는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요즈
음은 보통 3일장을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4일장도 간혹 있으나, 상사(喪事)에는 짝수를 써지 않고
홀수(奇數)를 써서 3, 5, 7, 9일장으로 나간다. 옛날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장삿날을 정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첫째로 고례(古禮)에는 신분 계급에 따라 장삿날의 차별을
두었다. 둘째로는 산세(山勢)와 수류(水流)를 보아 묘지(墓地)를 택하는 이른 바 풍수설(風水說)에
의하여, 좋은 묘지 선택이 자손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관계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좋은 자리 선택에
부심한 나머지 장삿날 정하기가 어려웠다. 셋째로 길일(吉日)을 택하느라고 어려웠다. 호상(護喪)이
상주(喪主)와 의논해서 장일을 결정하여야 하는 데 장일과 장지 결정은 부고를 내기 전에 결정되어야
한다.
2.장지(葬地) : 상을 당하면 장삿날과 함께 장지를 결정해야 한다. 선산(先山) 또는
선영(先瑩)이라 하여 한 집안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산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으나, 없는 사람은
공원 묘지라고하는 공동 묘지에 장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3.성복제(成服制) : 성복(成服)이란 상제들이 복제(服制)에 따라 성복(成服)을 입는 절차이다. 이
날은 『날이 밝으면 오복(五服 : 다섯 등급의 상복)의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복(服)을 입고
상청(喪廳)의 자기 자리에 나간 뒤에 조곡(朝哭)을 한 뒤에 남자는 영구(靈柩)의 동편에 여자는
서편에 서로 마주보고 서서 상향곡(相向哭)을 하고 조상한다.』그리고 조전(朝奠)을 올릴 때 겸하여
성복제전(成服祭奠)을 올린다. 성복(成服)은 대렴(大斂)을 한 이튿날, 죽은지 4일째 되는 날이
된다. 3일장에는 2일째에 입관· 성복· 성복제를 지낸다. 대렴(大斂)과 성복(成服)을 같은 날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염습의 준비가 되지 않아 3일이 지난 뒤에 대렴(大斂)을 하고, 그날로
계속해 성복(成服)하는 것은 본래의 뜻이 아니다.
■
부의(賻儀)
상가(喪家)에 부의금품(賻儀金品)을 내는데 있어 본인이 직접 조상(吊喪)가서 현금을 봉투에 넣어 내는
방법과 단자(單子)를 써서 현금인 경우에는 단자와 현금을 봉투에 같이 넣어 보내기도 하고 물품을 보낼
때는 물품은 따로 싸고 단자만 봉투에 넣어 같이 보내게 된다.
부의(賻儀)를 보낼 때는 백지에 단자(單子)를 써서 봉투에 넣어 보낸다. 만일에 단자를 쓰지 않았을
때는 봉투의 표면에 물목을 표기한다. 또한 조물(吊物)을 따로 싸고 단자만 봉투에 넣어서 보낸다.
그 문구와 서식은 다음과 같다.
①초상(初賞) 때 : 근조(謹吊), 부의(傅儀), 조의(吊儀), 향촉대(香燭代)
②소. 대상(小.大喪) 때 : 향전(香奠), 전의(奠儀)
■
문상(聞喪)
상주가 객지에 있다가 부모상을 듣고 돌아오는 것을 문상(聞喪)이라 한다. 부음(訃音)을 들은 즉시
곡하며, 사자(使者 : 부고나 조전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절하고 의복을 흰 옷으로 갈아 입고 집으로
떠나 온다. 집에 도착하면 시신 앞에 나아가 상복을 갈아 입고 곡한다. 먼 곳에서 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분상(奔喪)이라 한다. 그 후 성복(成服)을 하는데, 만일
상사에 갈 수가 없는 처지라면 영위(靈位)를 만들지만 재물은 올리지 않고 이 때에도 성복을 한다.
만일 집에 도착해서 이미 장례가 치뤄젔다면 먼저 묘소(墓所)로 가서 곡하고 절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아직 성복하지 못했으면 묘소 앞에서 변복(變服)을 하고, 집에 가서는 영좌 앞에 나가서 곡하고
절한다.
■
상식(上食)과 조석전(朝夕奠)
성복(成服) 후 부터 조석으로 상식(上食)을 올리고 곡을 한다. 이를 조석전(朝夕奠)이라 한다.
상식(上食)은 식사와 함께 올린다. 탁자에 제수를 진설하고 메 그릇 뚜껑을 연 다음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은 수저 그릇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한참 곡을 한 뒤에 갱(국)을 물리고 숭녕을 올려서 메를
세 숟가락 떠서 숭녕에 말고 조금 있다가 상을 치운다. 그러나 반찬과 잔은 그대로 둔다.
성복 후 발언할 때까지 관을 모셔 두는 곳을 빈소(殯所)라고 한다. 발인 후에는 따로 대청이나 적당한
방에 다시 빈소(殯所)를 만드는데, 병풍 또는 휘장을 두러고 앞을 여닫게 만들어 영위(靈位)를
봉안(奉安)한다. 조객(弔客)이 오면 휘장을 열어 조상(吊喪)하게 한다.
그리고 빈소에 상주(喪主)된 사람이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씩 진지상을 차려 드리어 이것 또한
상식(上食)이다. 이것은 평시의 진지와 다름 없는 것을 원칙으로 3년간을 드린다. 다만 초하루(朔)와
보름(望)에는 곡을 하는데, 이를 삭망전(朔望奠)이라 한다. 조전(朝奠)은 해가 뜨면 올리고
석전(夕奠)은 해가 진 뒤에 올린다. 석전(夕奠)은 조전(朝奠)과 같다. 석전을 할 때는 혼백을
받들어 영좌에 모시고, 상주 이하 모두가 슬프게 곡을 한다. 또 새 음식이 생겼을 때는 천신(薦新)을
하는데 오곡이나 백곡 중의 어느 것이나 새로 익었으면 반드시 해야할 것이다. 3년 안에 천신하는
것은, 오곡일 때는 밥을 지어서 상식으로 올리고 그 나머지도 상식 때 함께 올린다. 상식은 성복
후부터 올리며 조석으로 식사를 올린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진설은 생시와 같다.
[참고] 소렴(小斂)한 후부터 조석전(朝夕奠)을 올리고 대렴(大斂) 후부터 조석곡(朝夕哭)을 한다.
성복(成服)한 날부터 조석(朝夕)으로, 대상(大祥)이 끝날 때까지 상식(上食)을 생시와 같이 올리고
소상(小祥)을 지낸 다음부터는 조석곡(朝夕哭)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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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장(治葬)
치장(治葬)이란? 사람이 죽어서 매장하는 것을 말한다.『상례(喪禮)』를 보면 사람이 죽어면 석 달
만에 장사를 지낸다. 이보다 앞서 장사지낼 만한 땅을 고른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사대부(士大夫)는 석 달 만에 장사 지내고, 사(士)는 한 달이 지나면 장사지냈다.』라고
하였으나 현금에는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으며, 풍속에 따라 3일장 내지 5일장이면 예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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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發靷)
1.천구(遷柩) : 발인(發靷)하기 하루 전날 조전(朝奠) 때 천구(遷柩)할 것을 고한다. 이 때
영구를 받들고 사당에 가서 뵈옵고 마루로 옳기고 나서 대곡(代哭)을 시킨다. 오복(五服)을 입은
친척들은 모두 모여서 저마다 자기가 입을 상복을 입고 제 자리에 나아가 모두 곡을 한다. 이 때
친구들은 부의(賻儀)를 올린다. 이튿날 날이 밝으면 영구를 옮겨 상여에 모시고, 견전을 지낸다.
축관이 혼백을 받들어 상여에 모시고 향을 피우고 나면 발인하여 영구가 떠난다.
2.견전(견奠) : 견전이란 영구(靈柩)가 떠날 때 지내는 제사이다. 즉 영구를 상여에 실은 뒤
마지막으로 전(奠)을 올린다. 이것을 흔히 발인제(發靷祭) 또는 영결식(永訣式)이라고도 한다. 이 때
음식은 조전(朝奠)과 같고, 축관이 술을 따라 올리고 무릎을 끓고 고사(告辭)을 읽고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고 절을 한다. 제사가 끝나면 집사 중에 포(脯)를 거두어 상여에 넣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예법에는 없지만 효심에서 나온 것이므로 탓할 일이 못된다.
3.발인행렬(發靷行列) : 발인식은 영구(靈柩)를 상여에 옮겨 모신 뒤에 행하게 된다.
운구(運柩)하기 전에 상가(喪家)의 대문 밖 적당한 곳에 상여를 미리 설치하여야 한다.
대여설치(大輿設置)를 하고난 다음 발인식을 올릴 시간이 되면 영구(靈柩)를 운반하여 상여로 옮기는
절차로서 영구 앞에 놓인 전상(奠牀) 및 향안(香案)등을 철수하고 축관(祝官)이 천구취청사축(遷柩就廳事祝)을
읽는다. 다음 발인제를 올리고 발인할 때 행렬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떠나게 된다. ①방상(方相) ②명정(銘旌)
③영거(靈車) ④만장(輓章) ⑤공포(功布) ⑥대여(大轝) ⑦상주 ⑧존장(尊長) ⑨무복지친(無服之親)
⑩빈객(賓客)
4.노제(路祭) : 상여로 운구할 때 묘지까지 가는 도중 거릿제(路祭)라고 하는 것을 지내기도 한다.
고인과 친한 조객(吊客)이나 친족중에서 뜻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조전자(吊奠者)가 되어 준비한 제물로
적당한 장소에 분향하여 술잔을 올리고 끓어 앉아서 제문(祭文)을 읽고 배곡(拜哭)한다.
5.정상(停喪) : 상여가 묘지에 이르면 혈처(穴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형이 평탄한 곳을 택하여
상여를 안치(安置)한다. 집사는 영구(靈柩)앞에 병풍울 치고 영좌(靈座)를 모신다. 하관(下棺)
시간이 가까워지면 상여와 관의 외결관(外結棺)을 풀고 구의(柩衣)로 관위를 덮어 놓는다.
6.하관(下棺) : 천광(穿壙)과 회격(灰隔)이 끝나면 바로 하관(下棺)을 해야 하는데
하관(下棺)하기 전에 상주이하 복인들은 한 차례 곡을 한다. 곡이 끝나면 시간과 좌향을 잘 맞추어
내결관(內結棺)을 풀고 바르게 하관을 한다.
7.평토제(平土祭) : 평토제(平土祭)는 광중을 평토한 후에 행하는 제사이다. 먼저 묘앞에 병풍울
치고 혼백(魂帛)을 모신다. 제상에 제찬(祭饌)이 진설되면 상주는 분양재배하고
뢰주재배(뢰酒再拜)한다. 그리고 제상에 제주(祭酒)하여 술을 올리고는 독축(讀祝)한다.
8. 성분(成墳) : 평토(平土)를 한 후에 곧 금정기(金井機)안에 숯가루 혹은 석회를 조금 뿌려
둔다. 이것은 다음 날에 분묘를 고치거나 합장을 할 경우에 참고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분묘
복판에 표말을 씨우고 노끈을 매어, 그 한쪽 끝을 가지고 분묘 주위를 돌아 작은 나무를 꽂아서 표를
한다. 직경이 16 ~ 17자, 합장일 때는 20여 자가 되도록 성분(成墳)의 터를 잡는다. 또한
산소의 앞과 뒤에 각각 표말을 세워 좌향(坐向)을 바로 잡고, 금정기와 묘상각(墓上閣)을 걷고 성분을
마치면, 표말을 다 치운다. 이 때를 무덤 위와 산소 주위에 입히고 비를 세운다. 그런데 무덤의
높이는 넉자(四尺), 비석의 높이도 넉자(四尺), 바탕의 높이는 한자 정도로 한다. 만약 부인의
비석일 때는 남편의 장사를 기다려서 비를 세운다. 석인(石人), 석상(石像), 망주석(望柱石)을 무덤
앞에 세우기도 하고, 또는 혼유석(魂遊石)을 석상 북쪽에 향안석(香案石)을 석상 남쪽에 세우기도
한다. 비석(碑石)은 좋은 돌을 골라서 한다.
9. 반곡(返哭) : 반곡(返哭)이란? 장례가 끝나고 혼백을 집으로 모셔가는 것을 말하는데,
여묘(廬墓)라고 해서 상제가 무덤 앞에 여막(廬莫)을 짓고 살면서 지키게 되면 집으로 반혼하지
않았다.
10. 설영좌(設靈座) : 상주 일행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집사가 전에 있던 곳에 영좌를 만들어
놓고, 집에 도착해서는 축관이 신주를 모시다가 그 자리에 놓고, 혼백은 그 뒤에 놓는다. 이 때
소공(小功)이하 대공(大功)까지의 복인으로서 다른 집에 사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상하는 자가 있더라도 조례(吊禮)를 길에서 행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 온 뒤에 행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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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虞祭)
우제(虞祭)란 돌아가신 영혼(靈魂)을 위안하기 위한 제사이다. 즉 우(虞)는 신을 평안하게 한다는 安神의 뜻이며, 형체(形체)는 이미 땅 밑으로 돌아가고 없으니 영혼은 안장을
못하고 불안에 싸여 방황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제(虞祭)를 세 번이나 지내어 그
신으로 하여금 신주(神主)나 혼백에 안심하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제사이다. 우제(虞祭)는 장사지낸
당일부터 지내는데, 이날 처음 지내는 우제를 초우제(初虞祭)라 하고, 그 다음 유일(柔日) 아침에
지내는 것을 재우제(再虞祭), 재우제를 지낸 다음의 강일(剛日)을 골라 아침에 지내는 우제를
삼우제(三虞祭)라 한다.
1.초우(初虞) : 초우제(初虞祭)는 장사를 지낸 당일(當日)에 지내는 것이므로, 평토제를 지내고
반우(返虞) 반곡(返哭)하고 돌아와서 저물기 전에 지내야 한다. 만일 장지(葬地)가 멀어서 반혼하는
도중에 묵게되는 경우에는 그 기류(寄留)하는 곳에서 초우제(初虞祭)를 지내야 한다. 초우제는 장사날을
넘겨서는 안된다.
2.재우(再虞) : 초우(初虞)를 지내고 재우(再虞)는 초우(初虞) 뒤의 유일(柔日)을 골라서
지낸다. 유일(柔日)이란? 을(乙), 정(丁), 신(辛), 계(癸)의 간지(干支)에 해당한 날이다.
3.삼우(三虞) : 삼우(三虞)는 재우(再虞)뒤의 첫 강일(剛日)에 지낸다. 강일(剛日)이란?
일진(日辰)에 천간(天干)의 십간(十干)중에서 갑(甲), 병(丙), 무(戊), 경(庚), 임(壬)이
든 날이다. 그 예(禮)는 재우(再虞)와 같으나, 묘가 멀어서 도중에서 강일(剛日)을 만날지라도 그
예는 행사(行祀)하지 않고 집에 돌아온 후에, 강일을 만나서 삼우(三虞)를 행사(行祀)한다.
4.졸곡(卒哭) : 삼우(三虞)를 마친 후 석달만에 강일(剛日)을 택해서 졸곡(卒哭)을 지낸다.
요지음 풍속에는 귀천(貴賤)이 없이 모두 석달만에 강일(剛日)을 지낸다. 졸곡을 하는 하루 전에
그릇과 음식을 준비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채소와 실과, 술, 반찬을 진설한다. 축관이
출주(出主)하면, 상주 이하가 모두 들어가 곡하고 강신한다. 초헌, 아헌, 종헌을 마치고
유식(侑食), 합문(闔門), 계문사신(啓門辭神)을 행한다. 이로부터 조석에 슬픈 마음이 나도 곡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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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상(治喪) 뒤의 인사
장례식(葬禮式)이 끝나면 일보던 사람들이 돌아가는데, 이때 상주(喪主)는 물론이려니와 상제들이 각각
치사의 인사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때에 따라서는 수고를 해주신 분들에게 사례(謝禮)를 해야
마땅하다. 이와 같은 일은 대개 주부들이 잘 살펴서 하겠지만 상주로서도 꼭 인사의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다. 미처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다음에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한다. 안정 되는대로
망인의 유품을 정리한다든가 유언에 따라 해야 할 것이며, 재산 상속에 관하여 가족회의를 열어 의논해야 한다. 이때는 모두가 양보심을 발휘하여 불협화음(不協和音)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할
것이며, 형제간의 우애에 금이 가는 일이 없도록 일언반사(一言半辭)에도 조심하여 이웃의 귀감(龜鑑)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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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小祥)
1년 되는 날을 소상(小祥)이라 하고, 만 2년 되는 날을 대상(大祥)이라 한다. 소상(小祥)이란
초상일로부터 윤달을 제외하고 12개월째 되는 기일(忌日)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어머니가
아버지 보다 앞서 돌아 가셨을 때에는 이것을 장기지상(杖朞之喪)이라 하여 탈상(脫喪)하게 되므로,
소상 날이 대상 날이 된다. 그러자니 소상(小祥)을 앞당겨 11개월 되는 달 첫 정일(丁日)을 잡아
지낸다. 이 때의 소상을 연사(練祀)라 하고 12개월만의 소상에 해당되는 것이 대상(大詳)이 되는
셈이며, 15개월에 담사를 지낸다. 이것으로 3년 상을 마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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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練喪)
연상(練喪)이란 처(妻)가 사망한 날로부터 11개월째 되는 달의 중순(中旬)의 정일(丁日)을 받아
행사하는 것으로 이를 정일제사(丁日祭祀)라고도 한다. 그 아들의 입장으로는 부재모상(父在母喪 :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경우의 모친상)이 되는 셈이다. 11개월을 계산하는 방법은 사망달로 부터 셈하는
것으로 가령 사망한 달이 正月이면 11월이요 2월이면 12월이고, 3월이면 다음해의 정월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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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大祥)
대상(大祥)은 사망 후 만 2년만에 즉 소상(小祥)을 지낸지 1년이 되는 날에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축관이 신주를 받들고 사당(祠堂)에 들어가 모셔 둔다. 사당(祠堂) 문을 열고 신주를 바른 자리에
모시면 모두 두 번 절한다. 이 때 축관이 문을 닫으면 모두 물러 나온다. 신주가 아니고
혼백(魂帛)을 모셨다면 대상 후 묘역(墓域)에 묻는다. 이로써 3년상을 벗는 것이며, 상복과
상장(喪杖)을 태워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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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제사(潭祭祀)
담제사(潭祭祀)란 담제라고만 하는데, 사망일로부터 二十七개월째되는 달 하순(下旬)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낸는 제사이다. 三년상을 무사히 마치므로 자손된 마음이 담담(淡淡)하고 평안하다는
것이다. 담제일짜는 그 전달 하순에 날짜를 정하는데, 초상이 두 번 있을 때 먼저 초상의 담제는
초상중에 지낼 수 없다. 그것은 차마 흉한 일이 있는 동안에 길례(吉禮)를 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뒤 초상의 3년이 지난 후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이런 경우에는 자연히 담제는 지낼 수가 없다.
제사 지내는 절차는, 신위를 영좌가 있던 곳에 차리고, 그 밖의 일들은 모두 대상의 의식과 같다.
다만 3헌을 하는 동안은 곡을 하지 않고 사신(辭神)할 때만 곡을 한다. 축관이 신주를 받들어 사당에
다시 모시는 데도 곡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인을 그리는 마음이야 어찌 사라지겠는가? 항상
마음속에는 애도(哀悼)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달래는 것이 해마다 찾아오는 절기(節期)와
기일(忌日)이 있어 제사를 지냄으로써 생존시의 고인을 더듬어 기리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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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제(吉祭)
길제(吉祭)는 담제사를 지내고 난 한달 이내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정침(正寢)에
설전(設奠)하고 기제사와 같이 지내는 제사이다. 그 의의는 아무 연고없이 부모의 상을 치루었다하여
동시 일반기제(忌祭)로 옮겨지고, 따라서 오대조고비(五代祖考婢)는 기제(忌祭)에서 묘제(墓祭)로
옮겨지게 된다. 가례(家禮)를 보면 담제를 지낸 이틑날에 날짜를 정해서 길제(吉祭)를 지낸다. 초헌,
아헌, 종헌이 끝나고 유식, 합분 계문, 수조, 사신이 끝나면 신주를 도로 모시고, 상을 치우고,
남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천주(遷主)를 모셔다가 묘소곁에 묻고, 이로부터 내실에 들어가도 된다.
죽은지 27개월만에 지내는 제사인 길제(吉祭)의 날짜를 정하는 데는 주인(복을 벗었으니 상주라
하지아니하고 주인이라 한다.)이 담복을 입고 여러 형제들과 자손, 집사를 데리고 사당 중문밖에 서쪽을
향하고 향을 피우고, 담제 날짜를 정하고 사당에 고한다. 어버지가 먼저 죽어서 사당에 모셔졌다면,
어머니 초상이 끝난 후에 따로 길제를 지내고 체천(遞遷)할 필요가 없을 것같지만 그래도 정해진 제사는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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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移葬=改葬)
개장(改葬)이란 묘(墓)를 개수(改修)하거나 이미 묘를 딴 곳으로 옮겨쓰는 일, 즉 이장(移葬)하는
것을 말한다. 이장(移葬)을 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한해서만 이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부모,
조상의 묘를 쓴지 3년 이내에 원인 모를 재앙이 생겨 가산을 당진하거나, 묘에 물이 고였거나 고일
우려가 있을 때, 메가 너무 멀어 그 산소를 돌 볼 사람이 없을 경우 가까운 곳으로 모시고자 할 때,
묘가 장차 무너질 우려가 있거나 무너졌을 때, 장차 강(江)이나 저수지 등으로 물에 잠길 염려가 있을
때, 도로가 생기거나 건물이 들어설 때, 국가의 시책으로 이장 통고가 있을 때 등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고는 이장(移葬)하지 말아야 한다.
이장의 절차 : 개장을 하려면 우선 장사 지낼 만한 자리를 고르고, 다음 관을 만들고 염상과 염습할
베와 이불을 장만한다. 장사를 지내는 데에는 복인(服人)이 입을 옷도 만들어야한다. 다음으로 날짜를
잡아서 영역(塋域)을 열고 토지지신(土地之神)에게 제사를 드린다. 관(棺)을 만드는 것은 처음
초상때와 같이 한다. 관의 크기도 초상때에 쓰던 관의 크기를 겨냥해서 만든다. 만일 관을 새로 쓰지 않아도 되겠으면 모두 쓰지 않는다.
※ 고사축(告辭祝)
維歲次干支 ○月干支朔 ○日干支 孝曾孫 敢昭告于
유세차간지 ○월간지삭 ○일간지 효증손 감소고우
顯曾組考學生府君 體魄 托非其地 恐有意外之患 驚動
현증조고학생부군 체백 탁비기지 공유의외지환 경동
先靈 不勝憂懼 將卜以是月 ○日 改葬于墓所
선령 불승우구 장복이시월 ○일 개장우묘소
謹以酒果 用伸虔告謹告
근이주과 용신건고근고
[해석] ○년○월○일은 효증손은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증조할아버지 이시여, 그 땅은 체백의 의탁하실 데가 아니어서 의외로 선령께서 놀라실까 근심하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장차 이달 ○일을 가려 아무 곳으로 개장하려하와 정성껏 주과를 펴놓고 삼가
고하나이다.
이때 이장하려는 묘소가 선영들을 모신 근처에 같이 있으면 선영의 묘중 가장 웃어른 한 분에게
주과포(酒果脯)등을 진설하고 분향재배한 다음 단헌(單獻)으로 독축고유(讀祝告諭)한다. 즉 장차 그
자손의 무덤을 딴 곳으로 옮기겠다는 보고를 드리는 것이다.
※ 선친축(先山祝)
維歲次 ○○ ○月 ○○ 朔 ○日 ○○ ○代孫 敢昭告于
유세차 (太歲) 몇월(初一日日辰)삭 몇대손 감소고우
顯 ○ 代祖考 學生府君 顯 ○ 代祖考 學生府君
현(몇)대조고 학생부군 현 (몇)대조고 학생부군
顯 ○ 代祖비孺人 ○○○ 氏之墓 玆以先考 宅兆不利
현(몇)대조비유인(本貫姓)씨지묘 자이선고 택조불리
將改葬于 某所 謹以淸酌脯해 祗薦于 神尙 饗
장개장우 모소 근이청작포해 지천우 신상 향
[해석] ○년○월○일 ○대손 ○○은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대조부와 ○대조모 ○○ ○씨 어른의
무덤이 불리해서 장차 ○○으로 개장을 하려 합니다. 삼가 맑은 술과 포해로서 공경하여 신께 천신하오니
흠향하소서.
산신고유(山神告諭) : 구묘(舊墓)를 파기 전에 사람을 시켜 산신(山神)께 주과포 등을 진설하고
분향재배한 뒤 술을 올리고 다음과 같은 축을 읽는다.
※ 산신축(山神祝) - 舊山에서
維歲次 ○ ○ ○ 月 朔 ○ ○ 朔 ○ 日 ○○ 幼學 ○○○ 敢昭告于
유세차 (太歲) 몇 월 (初一日日辰)삭 몇 일 日辰 유학 성 명 감소고우
土地之神 玆有學生 ○○ ○ 公 卜宅玆地 恐有他患 將 改폄遷于他所
토지지신 자유학생 본관 성 공 복택자지 공유타환 장 개폄천우타소
謹以 淸酌脯해 祗薦于 神其保佑 비無後艱 尙 饗
근이 청작포해 지천우 신기보우 비무후간 상 향
[해석] ○년○월○일 유학 ○○은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이에 ○○어른의 묘를 이곳에 써 놓고
샐각하니, 다른 근심으로 두려워서 장차 묘혈을 열어 다른 곳에 옮겨 가려 합니다. 신에게 삼가 맑은
술과 포해로써 공경하오니 신께서는 도우시와 뒷탈이 없도록 해 주시고 흠향하소서.
이상과 같이 선영(先塋)과 산신께 고유제(告諭祭)를 올린 뒤에 면례(緬禮)하려는 묘에 역시 주과포
등을 진설하고 단헌(單獻)으로 아래와 같이 축을 읽는다.
※ 파묘축(破墓祝) - 舊山에서
維歲次 ○ ○ ○ 月 ○ ○ 朔 ○ 日 ○○ 孝子 ○ ○ 敢昭告于
유세차 (太歲) 몇 월 (初一日日辰)삭 몇 일 日辰 효자 이 름 감소고우
顯某位處士(學生 또는 某官)府君 葬于玆地 歲月滋久 體魄不寧
현모위처사(학생 또는 모관)부군 장우자지 세월자구 체백불녕
今將改葬 伏惟 尊靈 不震不驚
금장개장 복유 존령 불진불경
[해석] 이곳에 장사 지낸지 오래 되어서 체백이 편안치 못할까 염려되어 다른 곳으로 옮기고저 하오니
존령은 놀라지 마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