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世 윤손(允孫) 1414(태종 14) - 1467(세조 13)
시호(諡號) 장간공(章簡公) 자(字) 맹숙(孟叔)
초휘(初諱) 원손(元孫) 휘(諱) 윤손(允孫)
중시조 가평군(加平君)의 큰아들

1414년((태종 14년) 10월 3일 : 한양에서 출생하시어 학문과 병법을 두루 익히니, 타고난 성품은 관대하고 온화하며 순량(順良) 하시었음. 특히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 하시며 무예가 탁월하셨음. (世譜.世祖實錄卒記)

1438년(세종 20년) 4월17일 : 武甲科에 급제하시어 부사직(副司直 : 종5품)을 제수 받으심「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 문무과 방(榜)을 발표하고 문과에 하위지 등 33인과 무과에 이원손(李元孫) 등 28명에게 차등을 두어 관직을 제수 하였다」(世宗實錄)

1438년(세종20년) 4월26일 : 은영연(恩榮宴) 하사에 대한 치사 전(箋)을 올리다.
「새로 급제한 집현전 부수찬 하위지와 부사직 이원손이 전(箋)을 올려 은영연(恩榮宴) 하사에 대한 치사를 하였다. 그 글에 이르기를 "특별한 하사를 굽어 내리시니 은총으로 입음이 과분하며 우러러 큰 은사(恩賜)를 받들고 심정에 감격함이 그지없나이다. 분골쇄신하여도 갚을 길이 없사 온 즉 뼈에 새겨 어찌 잊으리까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등은 ....... 이하생략"」 (世宗實錄)

1439년(세종21년) 2월18일 : 평안도 지벽동군사(知壁潼郡事 : 종4품)로 명받아 하직 인사하니 임금이 인견 (引見 : 가까이 불러 봄)하고 「"본 군은 야인과 이웃하여 수어(守禦 : 방어)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가거든 너의 마음을 다하여 나의 뜻에 부응하도록 하라" 하고 인하여 궁시(弓矢)를 하사 하였다」(世宗實錄)

1441년(세종 23년) 1월 21일 「임금이 장수 적격자를 천거하도록 명하니 우의정 신개. 좌찬성 하연. 좌참찬 황보인. 병조판서 정연. 도진무 김종서 등이 지현사 이원손.(李元孫) 대호군 박종우를장수적임자로 선발하여천거하였음.」(世宗實錄)

1452년(문종 2년) : 문종이 5월에 승하하시고 단종이 즉위한 사실을 명나라에 고하고 인증 받기 위하여 8월에 수양대군이 사신으로 여러 수행원과 함께 북경(元京)에 갈 때 서장관(書狀官) 신숙주등과 경호 책임자로 수행하시고 그 이듬해(1453년 1월)에 돌아오심. (世祖.文宗.端宗實錄)

1453년(단종 원년) 3월4일 : 통정대부(通政大夫 : 정3품상.당상관) 행 지병조사(知兵曺事 :정3품)로 命 받으심. (端宗實錄)

1453년(단종 원년) 7월 1일 : 경상 좌도처치사(左道處置使)로 命 받으심. (端宗實錄)

1453년(단종 원년) 7월 28일 : 경상 좌도병마절제사(左道兵馬節制使)로 命 받으심. (端宗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