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世) 장준(長俊) 1487(성종 18) - 1535(중종 30)
칭호(稱號) 사직공(司直公)
익산공의 세째아들

1487년(성종 18년)보은현에서 출생하심.
사직공(司直公)께서는 인품이 준수하고 두뇌가 매우 명석하셨으며 성품 또한 강직하시어 어린 시절부터 학문의 성취도가 남달리 높아 조부이신 평호공께서 임금으로부터 하사 받으신 벼루(현재 사직공 종손(濬鎬)이 보관)를 물려주실 정도로 귀여움을 받으셨으나 순수학문에 정진 하셨을 뿐 당시 출세의 지름길이었던 과거(현 행정 사법고시)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음. (墓碣銘)

적개 친 공신이시고 재상이셨던 평호공의 친손자로서 음서(蔭敍)로 채용되시어 관적에 오르시나 초기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며 선략장군(宣略將軍 : 종 4품 무산계)에 오르시어 당시 5위의 군 편제 중 전위를 맡았던 충좌위(忠佐衛) 소속의 행 부사직(副司直 : 종 5품무관직)을 지내심. (世譜)

1535년(종중 30년) 4월 4일 하세 하심. (향년 49세)
공께서는 당시 병조(兵曹)에서 서반(무관직)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참의와 참판을 역임하셨던 4촌형 가원군께 벼슬길에 오르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시고 강호에 몸을 두고 명리를 멀리하며 경서(經書)를 가까이 하면서 심신을 수양하시는데 게을리 하지 않으셨으며 취향지인 예천(醴泉)에 정착하시니 후손들이 이곳을 세거지로 하여 번창하셨음. (墓碣銘)

배위(配位) 숙인(淑人) 안동권씨(安東權氏)
생년월일 및 졸년 미상, 기(忌) 5월 6일.
부 권석균(權石鈞) 참봉(參奉)
조부 권 호(權 皓) 현감
증조부 권경온(權敬溫) 목사(牧使)

공의 묘(墓) 경북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직전골 子坐
배의 묘(墓) 쌍봉(雙封)

자녀(子女) 슬하에 5남 2녀를 두셨음.
장남 담(聃) 증중훈대부(종3품계)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종3품관).
차남 치(?) 병조참지(兵曹參知:정3품)
삼남 완(脘) 공께서는 사림의 선비로 명리를 멀리하고 초야에 은둔하시며 문필을 즐겨 호를 평천거사라 하셨고 황해도 평산 안성으로 취향 정착하시어 후손들이 세거하며 크게 번창하였으나 국토가 양단되어 8.15 이후 북한 거주 후손들의 행적을 알 길 없어 매우 안타우나 100여세대가 월남하여 안정된 생활로 생업에 열중하고 있음.

사남 영(聆) 기자전 참봉을 지내심.
오남 빙(聘) 고손 이후 무후(無后) 되었음.
사위 김종윤(金宗胤) 진사.
사위 장응구(張應구) 인동인(仁同人) 생원 적개공신 연복군 장말손의 손자.